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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을 만들고 뛰어난 항해술로 고대문명의 획을 그은,페니키아인

jaison11 2023. 7. 1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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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 지도
페니키아 지도

오늘은 고대시대, 그리스 문명 훨씬 전인 청동기시대에서 세계사적 문명을 발전시키고, 전파하며, 뛰어난 항해술로 지중해 무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더 나아가 희망봉까지도 갔다 오는 등, 당시로서는 용맹함이 없다면 해 내질 못했을 항해술과 상인으로서의 교역을 가장 활발히 하며, 문명을 발전시킨 페니키아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페니키아인들의 문명적 발전은 지중해 지역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페니키아인들이 발명한 알파벳 문자는 많은 문화권에서 사용됨과 동시에 이후의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알파벳 문자는 이후로 많은 문명들의 문자체계에 대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대다수의 지중해 지역에서 중개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나 기술이 페니키아와 다른 지역 간에 전파되면서 상호교류와 문화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그들이 개발한 항해 기술은 지중해 지역에서 항로를 개설하고 교역이 활발해지는 폭을 넓혔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항구 도시 등의 건축 기술을 발전시켰고, 지중해 지역에 많은 대형 건축물을 건설하는 데에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건축 기술은 지중해 지역의 건축 및 도시화를 큰 폭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인류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이 선보인 대중교통 시스템은 지중해 지역의 교통 환경 개선과 이동성을 높이는데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대중교통 시스템은 이후 다른 문명들에서도 많은 지식과 기술면에서 계승되어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페니키아인들의 문명적 발전은 지중해 지역 전반의 문화와 기술 진보에 큰 역할을 했으며, 번영을 이룬 지중해 문명들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1.페니키아 소개

페니키아는 고대 가나안의 북쪽에 근거지를 둔 고대 문명입니다. 중심 지역은 오늘날의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로 이어지는 해안에 있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셈어파에 속하는 페니키아어를 사용했으며,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한 문명으로, 그들이 사용한 카나니테-페니키안 알파벳으로부터 후대의 여러 알파벳이 나왔습니다.

지중해 동부의 레반트 지역에서 시작된 고대 셈족 탈라소크라테스 문명으로, 주로 현대 레바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페니키아인의 영토는 역사를 통해 확장되고 축소되었으며, 그들의 문화의 핵심은 현대 시리아의 아르와드에서 현대 이스라엘의 갈멜 산까지 뻗어 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고국을 넘어 키프로스에서 이베리아 반도까지 지중해 전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페니키아인은 기원전 3000년경 레반트에서 등장한 기원을 알 수 없는 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페니키아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의 외래어로, 본래 이해되었을 응집력 있는 문화나 사회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페니키아인이 실제로 가나안인으로 알려진 셈어를 사용하는 광범위한 민족 그룹과 구별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2세기 중반에 청동기 시대 후기에 대부분의 주요 문화가 쇠퇴하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숙련된 상인과 선원으로 유명했으며 고전 고대의 많은 부분에서 지배적인 상업 권력이 되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천년 이상 지속된 광범위한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개발하여 그리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주요 문명 요람 간의 문화, 아이디어 및 지식 교환을 촉진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토착 기록이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잃어버린 문명으로 여겨져 왔으며,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이 복잡하고 영향력 있는 문명을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잘 알려진 유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확인된 알파벳으로, 그 기원은 시나이 원시 문자를 통해 히브리 문자의 기원과 연결되었으며, 지중해를 가로질러 전달되어 아랍어 문자와 그리스 알파벳, 그리고 차례로 라틴 문자와 키릴 문자를 개발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또한 조선, 항해, 산업, 농업 및 정부 분야의 혁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국제 무역 네트워크는 고전 서구 문명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기반을 육성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2. 페니키아 역사

흔히 페니키아인들이 동지중해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이야기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신화 면에서 볼 때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의 다른 문화와 유사합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스스로를 가나안인이라 불렀습니다.

약 3400년 전에 제작된 아마르나 문서에서 페니키아인들은 자신들을 가나안인이란 뜻의 케나 아니(Kenaani) 또는 키나 아니(Kinaani)로 불렀습니다. 이 문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이른바 바다 민족이라 부르던 이들이 침략한 시기보다 1세기 이전에 제작됐습니다. 약 2600년 전 밀레토스의 헤카타이오스는 페니키아를 키나라고 표기했고, 비블로스의 필로는 <신화학>에서 "키나란 페니키아를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약 5000년 전부터 비블로스에서 레바논시다를 배로 실어 날랐습니다.

고고학에서는 페니키아를 지금의 레바논 해안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 문명으로 파악합니다. 이들은 주변의 고대 이집트, 미노아, 필리스티네, 이스라엘 왕국 같은 여러 세력과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했습니다. 약 4600년 전에서 3300년 전 사이에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족 이동으로 인해 비블로스는 주변 민족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페니키아어와 아람어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수메르와 아카드의 군대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면서 페니키아는 히브리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고, 35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역사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약 3400년 전에 작성된 아마르나 문서에는 아모리와 히타이트가 페니키아의 여러 도시를 굴복시켰고, 비블로스 왕 리브-하다와 티르의 왕 아비-밀쿠가 이집트의 봉신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여전히 페니키아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유적 발굴과 함께 언어학적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페니키아의 기원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발달한 항해술을 이용해서 지중해 동남부를 빠르게 장악하고, 이어서 페니키아인들은 아프리카 북부의 카르타고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해 왕국을 세웁니다.

3. 알파벳을 만들다

페니키아인들은 22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인류 최초의 알파벳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표음문자였던 페니키아의 알파벳은 사용하기 쉬웠기에 페니키아의 무역 활동을 통해 지중해 여러 지역에 전파됐으며, 후일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알파벳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약 3000년 전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 키프로스, 시리아, 이스라엘 및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에 많은 묘비를 남겼으며, 페니키아어는 카르타고어의 모태가 되었고, 카르타고-페니키아어는 5세기까지 사용됐습니다.

페니키아는 초기 철기 시대의 지중해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알파벳, 선박 기술, 상업술, 과학 기술, 항해술 등이 그리스에 전해졌습니다.

4. 페니키아의 공적과 문화

페니키아는 최초로 갤리선을 사용한 문명으로 이를 이용한 지중해 무역으로 번성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목화, 유리, 염료, 와인, 철, 구리, 주석 등 다양한 상품을 수입하고 수출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뿔고동 껍질을 원료로 한 심홍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이를 티리언 퍼플이라고 부릅니다. 이 색깔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포이닉스라는 단어로 불렸으며, 이는 페니키아인들의 별칭이기도 합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한 문명으로, 그들이 사용한 카나니테-페니키안 알파벳으로부터 후대의 여러 알파벳이 나왔습니다.

페니키아는 해양 무역을 통해 알파벳을 북아프리카와 유럽에 전파했고, 이로부터 그리스어 알파벳이 만들어졌으며, 이는 후일 다시 에트루리아 문자와 로마자의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여러 신화와 종교를 수용하고 변형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바알과 아스타르트 같은 우상을 숭배하고 제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태양신 샤말과 달신 야릭 같은 천체신도 숭배했습니다.

◆페니키아의 예술

페니키아인들은 뿔고동 껍질을 원료로 한 심홍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이를 티리언 퍼플이라고 부릅니다.

이 색깔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포이닉스라는 단어로 불렸으며, 이는 페니키아인들의 별칭이기도 헙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목재, 돌, 금속, 유리, 상아 등 다양한 재료로 조각, 장식, 주얼리 등을 제작했습니다. 그들은 특히 유리공예에 뛰어났으며, 유리병, 유리구슬, 유리상 등을 만들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고대 로마시대에 성행했던 모자이크 예술품을 독자적 공예 분야로 육성하고 있고, 그 밖에도 도자기, 카펫, 가죽, 은세공품 등이 발달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한 문명으로, 그들이 사용한 카나니테-페니키안 알파벳으로부터 후대의 여러 알파벳이 나왔습니다. 페니키아는 해양 무역을 통해 알파벳을 북아프리카와 유럽에 전파했고, 이로부터 그리스어 알파벳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후일 다시 에트루리아 문자와 로마자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의 문화

페니키아인들은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여러 신화와 종교를 수용하고 변형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바알과 아스타르트 같은 우상을 숭배하고 제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태양신 샤말과 달신 야릭 같은 천체신도 숭배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공식 언어인 아랍어 외에도 프랑스어를 통용어로 사용하는 불어권 국가로서 각종 국제회의 개최 및 번역분야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연극 등의 공연분야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으며, 여타 이슬람 국가들에 비교하여 예술분야는 정부의 통제가 비교적 완화되어 있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항해술과 무역

페니키아인들은 발달한 항해술과 선박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중해의 여러 섬과 해안을 탐험하고, 지중해 동남부를 장악하고, 아프리카 북부의 카르타고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해 왕국을 세웠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상업술과 과학 기술도 발달시켰으며, 그들은 금속, 유리, 옷감, 향료, 보석 등 다양한 상품을 거래하고, 화폐와 가중치를 사용하고, 천문학과 수학을 연구하고, 지도를 그렸습니다.

◆ 종교와 문화

페니키아인들은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여러 신화와 종교를 수용하고 변형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바알과 아스타르트 같은 우상을 숭배하고 제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태양신 샤말과 달신 야릭 같은 천체신도 숭배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목재, 돌, 금속, 유리, 상아 등 다양한 재료로 조각, 장식, 주얼리 등을 제작했습니다.

그들은 특히 유리공예에 뛰어났으며, 유리병, 유리구슬, 유리상 등을 만들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공식 언어인 아랍어 외에도 프랑스어를 통용어로 사용하는 불어권 국가로서 각종 국제회의 개최 및 번역분야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연극 등의 공연분야가 비교적 활성화 되어 있으며, 여타 이슬람 국가들에 비교하여 예술분야는 정부의 통제가 비교적 완화되어 있는 편이었습니다.

5. 카르타고의 건국

카르타고는 티레에서 온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아마도 처음에는 남부 이베리아 반도와의 금속 무역의 기지였을 것입니다. 시칠리아의 그리스 역사가 티마이오스는 기원전 300년경에 카르타고의 건국을 기원전 814년으로 두고 있는데, 이는 현대 역사가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날짜입니다.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 사르데냐, 시칠리아, 몰타, 발레아레스 제도, 이베리아 남부에 걸친 다민족 제국으로 성장했지만 결국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146년)에서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 로마 도시로 재건되었습니다.

6. 페니키아의 항해술

페니키아인들은 해상 민족으로 우수한 조선기술과 항해기술을 보유했습니다. 그들은 갤리선이라는 긴 선체와 돛을 갖춘 선박을 만들어 지중해의 여러 섬과 해안을 탐험하고, 무역을 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연안항법을 기본으로 했으며, 천문 관측과 조수간만의 차, 조류의 흐름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을 확보했습니다. 그들은 별자리와 별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방향과 시간을 파악하고, 해안선의 모양과 산맥의 위치를 기록하고, 바다에서 발견되는 새나 물고기 등의 특징을 활용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를 넘어서 홍해, 인도양, 대서양에도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 북부의 카르타고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또한 약 2700년 전에 약 30척의 선박과 2000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파견하여 아프리카를 일주하는 기록적인 항해를 수행했습니다.

 

7. 페니키아문명이 남긴 것?

페니키아 문명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페니키아 알파벳입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5세기경에 22개의 자모로 이루어진 고유한 문자체계를 발명했으며,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알파벳의 원형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페니키아인들은 해양 무역을 통해 알파벳을 북아프리카와 유럽에 전파했고, 이로부터 그리스어 알파벳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후일 다시 에트루리아 문자와 로마자의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페니키아 문명의 또 다른 유산은 항해술과 무역입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갤리선이라는 긴 선체와 돛을 갖춘 선박을 만들어 지중해의 여러 섬과 해안을 탐험하고, 무역을 했습니다. 그들은 연안항법을 기본으로 했으며, 천문 관측과 조수간만의 차, 조류의 흐름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을 확보했습니다. 그들은 지중해를 넘어서 홍해, 인도양, 대서양에도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 북부의 카르타고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또한 약 2700년 전에 약 30척의 선박과 2000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파견하여 아프리카를 일주하는 기록적인 항해를 수행했습니다. 페니키아 문명의 다른 유산으로는 문화와 종교가 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가나안의 다른 문화와 유사하게 신화와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은 뿔고동 껍질을 원료로 한 심홍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이 색깔은 그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금속공예와 조각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상은 페니키아의 문명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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