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수 1위에 칭기즈칸 몽골제국군의 영원한 총사령관, 수부타이가 선정되었습니다.

생애 참전 기록 73전 72승 1패(첫 금나라 전투, 후에 결국은 금나라를 정복함)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에 빛나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용맹한 장수, 수부타이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칭기즈칸, 알렉산더 대왕, 한니발, 티무르 등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몽골제국군의 수부타이가 어떻게 뽑히게 되었는지, 그의 생애를 따라가 봤습니다.

 

 

1. 몽골제국군의 말

몽골의 말은 서양의 멋지고, 잘생긴 말이 아닙니다. 일단, 목이 짧고, 다리도 짧으며, 볼품이 없습니다. 서양의 기사들이 타는 잘생긴 말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몽골의 말은 서양의 잘생긴 말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기막힌 역량이 있습니다.

서양의 말들이 전속력으로 4km를 주파하는데 비하여, 몽골의 말은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80km까지 주파합니다.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하여 달립니다.

그리고 실제 죽을힘을 다해,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말들은 실제 죽는다고 합니다. 또한 순종적이라 주인의 말을 잘 들으며, 먹는 양도 그리 많지 않고, 기르기도 편해서, 초원의 풀들을 말없이 뜯어먹으며, 생존하기에, 유목민인 몽골인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라고 합니다.

실제, 몽골인들은 말을 가축이 아니라, 식구의 일원으로 생각하기에 반려견을 키우듯이 매우 끔찍하게 아낀다고 합니다.

또한, 전투에서도 갑자기 달리다, 정지할 수도 있으며, 갑자기 정지후 뒤로 돌아 활을 쏠 수 있도록 회전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일상에서나, 전투에서 모두 최적화되어 있는 몽골의 말은 몽골제국군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몽골 말
몽골 말

몽골 조랑말의 키는 120~140㎝, 몸무게는 250~300㎏ 정도. 키 150~170㎝ 중앙아시아형 말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상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 더위는 물론 영하 40도의 추운 겨울도 버텨냅니다. 덩치 큰 말들이 지쳐서 나가떨어진 뒤에도 이 조랑말인 몽골말들은 계속해서 달릴 수 있습니다.

과거 몽골인이 세계를 정복할 때 타고 다닌 게 바로 이 조랑말입니다.

중동이나 유럽의 말들과 맞닥뜨렸을 때 체구나 속도에서는 도저히 상대되지 않았지만 몽골인은 이 말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전격전이 아니라 지구전입니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보는 전술 전략이었습니다.

몽골인은 사계절 이동하는 유목민이었기에 먼 곳으로 떠날 때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동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고, 칭기즈칸의 서방 원정을 보면 전쟁터까지 가는 데 1년,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1년이 걸렸습니다.

러시아·중동을 정복했던 그의 손자들도 가고 오는 데 각각 1~2년씩 보냈습니다. 가족을 고향에 두고 군량미를 아끼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했던 정주 농경민들과 전혀 다른 원정 방식입니다. 유목민들은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가족과 가축을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피신시켜 놓고, 평소와 다름없는 홀가분한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몽골 유목민은 특히 조랑말의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철갑을 두른 중무장은 가능하면 피했고, 적진을 향해 빠르게 돌격하지도 않았습니다. 병사 1인당 대여섯 마리 말을 데리고 왔고, 원정 중 이를 계속 갈아타면서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말이 지치지 않도록 했으며, 적진과도 상당한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사거리가 긴 활을 끊임없이 퍼부으며 상대방을 교란했습니다. 적군은 정작 맞붙어 싸워보기도 전에 사상자가 속출하며 무너지기 일쑤였습니다. 몽골군은 바로 이때를 기다렸다가 사방을 에워싸고 다친 먹잇감을 사냥하는 맹수들처럼 달려들었습니다.

몽골이 세계 정복에 성공한 것은 기마전 덕분이라고 합니다. 체구가 크고 신속하게 달리는 ‘롱다리’ 천마가 아니라 덩치가 작고 속도도 느린 ‘숏다리’ 조랑말의 승리였습니다.

몽골 제국의 탄생은 검술과 창술을 갈고닦은 중세 유럽 기사들이나 무슬림 전사들처럼, 탁월한 전투력에 힘입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수없이 많은 조랑말, 수백 m까지 화살을 날리는 합판궁, 지휘관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유목민, 먼 원정길에 함께한 가족들, 이 여러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한 시스템을 이룩해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 몽골제국군의 전술 및 승리요인

몽골제국군은 13세기에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한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지형과 기후, 적의 문화와 전투방식에 맞춰 유연하고 창의적인 전술을 사용하였습니다. 

-가짜 후퇴: 적의 공격을 받은 척하고 후퇴하는 것으로 적을 유인하고, 적의 질서가 흐트러지면 반격하는 전술입니다. 몽골군은 이 전술을 칼카 공격이나 레그니차 전투에서 사용하였습니다.

-분할 작전: 자신의 군대를 여러 부대로 나누어 적의 주력과 주변 지역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술입니다. 몽골군은 이 전술을 호레즘 정벌이나 유럽 원정에서 사용하였습니다.

-속공: 적의 방어를 뚫기 전에 빠르게 공격하여 적의 의지와 준비를 깨뜨리는 전술입니다. 몽골군은 이 전술을 금나라 정벌이나 송나라 정벌에서 사용하였습니다.

-화살세례: 적을 포위한 후에 마치 메뚜기 떼가 하늘을 덮는 듯한 엄청난 화살을 퍼붓는 전술입니다. 몽골군은 이 전술을 유럽 원정이나 조지아 정벌에서 사용하였습니다.

-파비안 전술: 아예 적과의 교전을 피하거나 지연하는 전술입니다. 몽골군은 이 전술을 헝가리 정벌이나 송나라 정벌에서 사용하였습니다.

측면공격과 이중포위: 적의 측면이나 후위가 노출된 경우 또는 성을 공격할 때에 그리고 적이 약해졌을 때 포위를 하는 전술입니다. 몽골군은 이 전술을 칭기즈칸의 서정이나 바투의 유럽 원정에서 사용하였습니다.

-공성전술

몽골제국군은 공성전에도 능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성과 도시를 공략하였습니다.

카란다르(Kharandaar) : 몽골제국이 주로 사용한 대표적인 공성전술로, 적의 성벽을 부숴내기 위해 화살과 석궁 등의 원거리 무기와 함께 노크장치나 어금니 등의 교란기구를 이용하여 성벽을 관통하였습니다.

장기진(Janggijin) : 몽골제국이 적의 성문을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한 전술로, 대규모의 화살과 쇠뇌를 사용하여 성문을 공격하였습니다.

와기(Whagi)/황산비(Hwangsanbi) : 몽골제국이 적의 성벽을 돌파하는 데 사용한 전술로, 대규모의 전투마들을 이용하여 적의 성벽을 공격하였습니다.

키루구(Kirugu) : 몽골제국이 적의 성문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한 전술로, 대규모의 화살과 쇠뇌를 사용하여 성문을 공격하였습니다.

공성무기: 몽골제국군은 중국이나 이슬람 세계에서 얻은 공성무기를 잘 활용하였습니다. 그들은 트레뷰셋, 석궁, 화약 등으로 성벽과 수비병을 파괴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221년 니샤푸르를 포위했을 때, 3천 개의 석궁과 트레뷰셋으로 함락시켰다고 합니다.

-포로와 기술자: 몽골제국군은 공성전 중에는 무슬림 또는 중국 기술자의 지시에 따라 포로들이 공성무기를 세우고, 몽골군은 쉴 새 없이 공성무기를 발사해 수비병을 피로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포로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거나 성벽 위로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협박과 유인: 몽골제국군은 성과 도시를 공격할 때에는 협박과 유인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성과 도시의 주민들에게 항복하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반항하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또한, 성문을 열어주면 보상을 주겠다고 유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241년 브레슬라우를 공격할 때에는 성문을 열어주는 사람에게 1000 마리의 양을 준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화재와 침수: 몽골제국군은 성과 도시를 화재나 침수로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화살에 불을 붙여 성벽이나 건물에 쏘거나, 공성무기로 불타는 재료를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강이나 운하를 막거나 파서 성과 도시를 침수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237년 불가리아의 볼가르를 공격할 때에는 볼가 강의 수문을 파괴하여 도시를 침수시켰습니다.

-전략:

이동성 전략 : 몽골 제국은 기병 중심의 이동성이 뛰어난 군대를 구축하여, 이동 중에도 전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작은 부대로 나누어 적진을 덮칠 것이나 퇴각할 경우에도,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잘 조율하였으며, 다른 지역에서 적의 방어형태나 전략을 살필 때 사용하였습니다.

민병대 전략 : 몽골 제국은 침공 시, 민간인 또한 참전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군사적 목표와 함께, 지역 내 격려와 설득을 통해 성장시키는 과정에 민병대를 필수 요소로 삼았습니다.

약점 공격 전략 : 몽골 제국은 적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의 약점을 짚어 차례로 의기소침해 나가는 전략을 사용하였습니다. 적의 공격성을 소멸시키려면 주된 타격 위치를 파악하고, 유동적인 맞서기를 시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란 전략 : 몽골 제국은 적의 집결지, 연결관, 식량공급기지 등 공격적인 지점이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적점도 꾸준히 평소와 다르게 추적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깊은 해외 정보 수집 능력을 통해 적의 약점을 찾아내기도 하였습니다.

3. 몽골 제국의 전쟁

몽골 제국은 13세기에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한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지역과 문화, 종교에 속한 나라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금나라와의 전쟁: 몽골 제국은 1209년부터 1279년까지 중국 북부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금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습니다. 몽골 제국은 금나라의 성벽과 공성무기, 화약 등에 맞서고, 금나라는 몽골 제국의 기병과 활쏘기, 분할 작전 등에 맞서고, 양측은 서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몽골 제국은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북부를 정복하였습니다.

-남송과의 전쟁: 몽골 제국은 1235년부터 1279년까지 중국 남부를 지배하던 남송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습니다. 몽골 제국은 남송의 강력한 해상력과 산악 지형, 저항 운동 등에 맞서고, 남송은 몽골 제국의 대규모 침공과 공성무기, 화약 등에 맞서고, 양측은 서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몽골 제국은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남부를 정복하였습니다.

-고려와의 전쟁: 몽골 제국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한반도를 지배하던 고려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습니다. 몽골 제국은 고려의 강화도와 삼별초 등의 저항에 맞서고, 고려는 몽골 제국의 반복적인 침략과 강화 요구에 맞서고, 양측은 서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고려는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봉신국이 되었으나, 형식적으로는 나라를 유지하였습니다.

-유럽과의 전쟁: 몽골 제국은 1236년부터 1242년까지 동유럽과 중앙유럽을 침략하였습니다. 몽골 제국은 루스, 폴란드, 헝가리, 보헤미아 등의 나라들을 공격하고, 유럽 군대들은 몽골 제국의 기병과 활쏘기, 분할 작전 등에 맞서고, 양측은 서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몽골 제국은 유럽을 정복하지 못하고 철수하였습니다.

-

일본과의 전쟁: 몽골 제국은 1274년과 1281년에 두 차례 일본을 침략하였습니다. 몽골 제국은 일본의 섬나라라는 특성과 삼국의 연합군, 그리고 쇼군의 지휘력 등에 맞서고, 일본은 몽골 제국의 대규모 침공과 공성무기, 화약 등에 맞서고, 양측은 서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몽골 제국은 일본을 정복하지 못하고 철수하였습니다.

몽골군의 공성전술

4. 몽골제국군의 총사령관 수부타이의 생애와 업적

>

몽골제국군 총사령관 수부타이
몽골제국군 총사령관 수부타이

몽골제국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칭기즈칸이나 오고타이칸 같은 칸들을 떠올리실 수 있겠지만, 그들보다도 더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더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멸망시킨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수부타이 총사령관입니다.

-생애

수부타이는 1176년에 태어났으며 1189년부터 형인 젤메를 따라 칭기즈칸의 장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196년 자무카와의 전쟁에서 활약하였고, 1200년 타이치우드족, 1202년 타타르족, 1203년 케레이트족, 1204년 나이만족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1205년에는 메르키트족을 소탕하는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금나라 정벌에서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수부타이는 칭기즈칸의 서정 때는 제베와 함께 호레즘 국왕 추격명령을 받고, 그를 카스피해의 한 작은 섬으로 몰아넣어 죽게 했습니다. 뒤이어 이란·캅카스의 여러 도시를 공략하였고, 이어 남루스 초원으로 진격하여 1223년 킵차크족과 루스 제후의 연합군을 궤멸시키고, 이 초원을 널리 공략한 후 돌아왔습니다.

1233년 오고타이칸 치세 때는 금나라 도읍 변경을 포위 함락시켜 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으며, 바투의 동유럽 원정(1236년∼1243년) 때는 부사령관이 되어 큰 공을 세웠습니다. 

수부타이는 1248년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죽음은 몽골제국의 유럽 정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부타이가 살아있다면 유럽 전역을 정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투 업적

수부타이는 평생에 걸쳐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고 멸망시켰으며 총 72번의 회전에서 승리했습니다. 회전이란 두 군대가 적당한 장소에 결집해 '모 아니면 도’식의 한 타 총력전을 펼치는 전투를 말합니다.

수많은 명장들도 일생에 5번 이상의 회전을 쉽게 경험하기 힘든데 수부타이는 평생 호레즘 제국, 키예프 루스,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 조지아, 아르메니아, 금나라, 송나라 등의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각 유목, 부족, 여러 국가, 중앙아시아에 있는 모든 국가를 격파했으며 서양에서는 칭기즈칸과 동급으로 악명이 높은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입니다. 히틀러와 나폴레옹도 못해낸 러시아 정벌을 이뤄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수부타이의 전투 업적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호라즘 제국 호라즘 정벌(1219년∼1221년) 호라즘 제국 멸망 키예프 루스 칼카 공격(1223년) 루스 제후 연합군 대패

불가리아 공격(1236년) 볼가르 왕국 멸망

폴란드 레그니차 전투(1241년) 폴란드 왕국 대패

헝가리 모하치 전투(1241년) 헝가리 왕국 대패

조지아 정벌(1220년∼1236년) 조지아 왕국 멸망

아르메니아 정벌(1236년∼1243년) 아르메니아 왕국 멸망

금나라 정벌(1232년∼1233년) 금나라 도읍 변경, 함락

송나라 정벌(1247년∼1248년) 송나라 공격

-수부타이의 가문

수부타이는 우랑카이족 출신으로, 칭기즈칸의 사구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형인 젤메와 함께 칭기즈칸의 장수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가문은 몽골 제국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장군과 왕: 수부타이는 몽골 제국의 최고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고 멸망시키고, 총 72번의 회전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는 칭기즈칸과 동급으로 악명이 높은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칭기즈칸, 오고타이칸, 귀위크칸 3대에 걸쳐 몽골 제국의 장군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또한 쿠빌라이를 후계자로 지명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인 우리얀타이도 장군이 되었으며, 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은 몽골 제국의 5대 칸이 되었습니다. 쿠빌라이칸은 송나라를 정복하고 원나라를 세웠습니다.

왕조와 국가: 수부타이의 후손들은 여러 왕조와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원나라와 청나라입니다. 원나라는 쿠빌라이칸에 의해 세워진 몽골 제국의 후계 국가로, 중국 전역을 통일하였습니다. 청나라는 수부타이의 11대손인 누르하치에 의해 세워진 만주족의 왕조로,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통일하였습니다. 또한 수부타이의 후손들은 금시샤르 칸국, 치나시드 왕조, 치바트 칸국 등을 세웠습니다.

문화와 예술: 수부타이의 후손들은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도 활약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쿠빌라이칸과 영주왕입니다. 쿠빌라이칸은 문학과 연극을 사랑하였으며, 시인인 나잔과 연극작가인 구안한 칭을 후원하였습니다. 영주왕은 청나라의 4대 황제로, 문화와 예술을 장려했습니다. 그는 시인이자 화가였으며, 시집인 <영주시집>과 화집인 <영주화집>을 남겼습니다.

수부타이는 몽골 제국의 최고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고 멸망시키고, 총 73번의 회전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는 칭기즈칸과 동급으로 악명이 높은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또한 유연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적에게 적응하고, 적의 방어를 깨고, 적의 저항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몽골 제국의 성장과 번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수부타이의 생애와 전투 업적, 전략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수부타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명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흔적은 아시아와 유럽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