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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남녀평등이 더 잘 실천된 서양의 여성들이 결혼 후에 남편의 성을 따라 이름뒤에 남편의 성을 붙이는 이유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미국에선 여성 70%가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릅니다. 영국에선 그 비율이 무려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2016년 기준 18~30세 여성 85%가 남편 성으로 바꿨습니다. 이전 세대보단 줄어든 비율이라고 해도, 여전히 서구 많은 나라에 이 같은 문화적 규범은 버젓이 존재합니다. 보다 더 개인주의적이고 성평등을 추구하는 사회가 됐음에도 그렇습니다.

페미니즘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미국에선 서른 살 이하 여성 68%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선 60%가 그렇습니다.

 

결혼식

성씨 문화를 연구하는 영국 브래드포드대학교 사이먼 던컨 교수는 "'기혼 여성은 남편의 소유물'이라는 가부장적 관념에서 이 같은 문화가 비롯된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운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에서 '아내를 소유한다'는 개념이 사라진 지 한 세기도 더 지난 데다 법적으로 남편의 성을 따를 의무가 없음에도 여전히 많은 영어권 국가에 이런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서유럽 국가 상당수가 남편 성 따르기 관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스페인과 아이슬란드에선 기혼 여성도 자신의 성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며, 그리스에선 1983년 여성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성을 평생 유지해야 한다는 법률이 제정됐습니다.

 

서양에서 여성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자신의 본래 성을 계속 쓸 수 있는데도 말이죠 남편 성 따르기는 명백한 남성 우월주의 문하의 유산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지위와 남녀평등 의식이 그 어느 곳보다 높은 서구 세계가 이를 여전히 받아들이는 건 좀 의아합니다.

 

1. 사회적 비용 경감

 

우선 서구권 에서 실질적인 신분증 역할을 하는 운전면허증과 요건을 모두 바꿔야 합니다. 잠시라도 없으면 살기 불편한 신용카드와 은행 계좌도 명의변경을 해야 합니다. 보험을 들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처럼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나라들이 아니라서 이거 하나하나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재발급에 따른 비용도 듭니다.

예를 들어 여성학자 의 경우 결혼 전에 논문과 결혼 후의 논문이 이름이 다르면 같은 저자로 검색되지 않아서 경력에 큰 저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작가들도 마찬가지지입니다. 눈문이나 문학 작품이 결혼 전 결혼 후 재혼 후로 같은 사람이 3명의 저자로 나눠질 수 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얼마 전까지 독일 총리이었던 앙겔라 메르켈이 재혼하고서도 전남편의 성인 메르켈을 그대로 썼습니다. 메르켈은 많은 논문을 쓴 물리학 박사 출신입니다. 이런 불편함에도 2016년 영국의 b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여성은 70% 가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바꿨습니다.

 

나머지 원래 성을 유지했거나 자신과 남편의 성을 혼합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2. 결혼의 발달사

 

인류 초기엔 주로 큰 친홍으로 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농경과 유목의 발달로 부족의 규모가 커지면서 근친혼은 금지되었습니다.

 

유전적인 결함으로 인한 기아의 탄생도 문제였고 다른 곳에서 여성을 데려오면 인구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 짝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남자들은 밖에서 닥치는 대로 신붓감을 잡아와야 했습니다 이때 여자를 납치할 때 쓰던 그물이 면사포, 납치를 돕던 친구들이 신랑 들러리, 여자에게 채우던 족쇄가 결혼반지, 여자 가족이 찾는 것을 포기할 때까지 시간 끌던 게 , 신혼여행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결혼은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 혹은 남자의 재산으로 변질이 되면서, 목숨 걸고 훔쳐 오거나 돈을 내고 사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자들은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남편의 성을 따르는 문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3. 성(family name)이 만들어진 과정

 

 

성이 만들어진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략 10세기 전만 해도 대부분은 이름이나 별명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봉건 영주들이 자신의 이름을 노비들에게 붙임으로써 성이 만들어졌습니다.

 

14세기 이후에는 일반 서민들도 성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인구가 늘어나면서 점차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생기자 봉건 영주들의 노역에 동원하거나 또는  정확한 구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주로 하는 일을 이름 뒤에 붙였습니다.

 

그게 제일 간편한 방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에 윌리엄 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의 있습니다. 한 명은 대장간을 하고 한명은 빵을 만드는 일을 하면,대장간을 하는 사람은 윌리엄 스미스 또 다른 한명은 윌리엄 베이커로 구분을 해서 불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미스와 베이커 즉 대장장이와 빵 만드는 사람이 성으로 굳어졌습니다. 아마 유럽에서 이름이 모두 달랐다면 성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인구가 더 늘면서 이젠 대장간을 하는 사람도 빵 만드는 사람도 많아져 직업명 만으로는 사람을 특정 짓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생김새, 신체 특성등을 이용해 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피부가 가무잡잡하면 브라우니, 여우같이 생기면 팍스 등으로 지어졌습니다.

 

이름보다 성이 훨씬 중요한 우리와 중국을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옛날엔 국민을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백까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이란 뜻이니 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 줍니다.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기 때문에 남자의 성만큼이나 시집온 아내의 성도 중요했습니다.

 

사극에서 외척의 문제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도 바로 여성의 성의 어떠한 영향력을 갔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19세기말 메이지유신 때 영국 따라 하기를 하면서 모든 사람이 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랜 가문이나 혈통과 관계없이 이를 또 유럽과 비슷하게 살던 동네의 특징이나 위치를 기반으로 성을 만들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의 성은 무려 12만 3천 여 개나 됩니다.

 

이러다 보니 일본에서 성은 유럽처럼 크게 중요시되지 않았고 결혼한 여성도 96% 가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성이 결혼 후 남편은 물론 아이들과도 같은 성으로 연결되면  하나의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본 듯합니다.

 

일본은 부부의 성은 하나여야 한다는 걸 법률로 정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몇 차례 위헌 심판에서 이를 옹호한 일본의 언론은 부부의 성이 다르면 가족의 결속력을 헤쳐 가정 붕괴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럽과 유럽의 식민지 어떤 국가들은 대개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같습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칠레 같은 스페인 언어권 나라들은 우리처럼 각자의 성을 유지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강력한 이유(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는)는 유산에 대한 상속 때문이라는 것도 크다고 봅니다. 남편과 성이 다르면 상속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도 남편의 성을 따르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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